2008/04/28 01:12
여행/200802 日本, 北海道
사실 진작부터 쓰려했던 글인데, 여행기를 다 쓰고나서 써야지, 했던 글이 이제야 쓰게 되었다. 이 귀차니즘이란.
뭐 거창하게 이름 붙여 놓은것 같지만, 사실 그냥 여행을 다녀와서 '일본은/홋카이도는 이렇더라..'하는 감상을 조금 써보려 하는 것 뿐이다. 밝혀놓듯, 나무를, 그것도 아주 잠깐 보고서 숲을 논하는 꼴이긴 하다.
1. 친절
흔히들 일본 사람들, 일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면, '혼네(本音)'와 '타테마에(建て前)'를 자주 언급한다. 혼네는 우리말로 하자면 본심, 정도가 될것이고, 타테마에는 표현 정도일까? 간단히 말해 본심은 그와 같지 않은데, 그런것처럼 행동하는 이중성을 가르키는 말이다.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혼네가 아니다, 교육과 문화에 학습된 타테마에에 불과한 것이다, 라는 식의 논리를 펴며 혹자는 그런 그들의 이중성을, '진정한 친절'이 아니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잠시 겪어본 그들의 친절, 혹은 타테마에는 훨씬 좋았다. 사실 그런 이중성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연 다들 직선적일까? 가게에 들어설 때 반갑게 인사하는 종업원, 무언가를 물어볼때 귀찮아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친절을 우리는 좋게 여기지만, 과연 그것이 그들의 본심일까, 하고 얼마나 따져보는지.
타테마에에 불과하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 어차피 피상적인 관계에 불과할 뿐인걸.
그런 점에서, 그런 타테마에는 오히려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공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려고 리무진 버스를 기다릴때, 그 버스 승차를 안내하는 아저씨를 보며 나는 여실히 느꼈다. "아, 아줌마! 거기 서 계시면 어떡해요! 이쪽으로 오세요, 서울역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어디 가시는데요, (서울이요) 아, 서울 어디요!"
이런게 한국식 혼네일까? 진실한, 친근감 있는 모습?
글쎄올시다. 난 형식적인 타테마에가 훨씬 좋은것 같은데.
아, 그리고 그것도 타테마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이상하게 얼굴에, '나는 현재 만족스럽습니다.'라고 써 있는것 같았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도, 정말 그 일을 즐겁게,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마지못해 난 이걸 하고 있지만,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그러니 날 귀찮게 하지 말아주세요, 하는 표정은 거의 못 본것 같은데. 이건 정말 순전한 내 느낌이지만.
2. 내국인 중심
폭설을 뚫고 삿뽀로에 내려 입국장에 처음 들어선 순간부터, 인천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아.. 확실히 내국인(일본인) 위주로 움직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선 탑승구는 저쪽 구석에 숨겨(?) 놓고. 국내선 탑승장쪽은 거의 일본어로만 안내가 가득가득 되어있고. 아주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면 변변한 영어 안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사실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싶긴 하다. 우리나라에서 내가 외국인의 입장이 되어본 것이 아니니까. 다만,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못된 심보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그런 모습을 본다면 '뭔가 미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반해, 그들에게선 뭐랄까, 자존심이랄까, 자부심이랄까.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며 흔히 하는 말처럼, '일본에 왔으면 일본어를 해야지.' 라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괜한 자격지심인가?
그러나 이 부분은 확실히 불편하긴 했다.
삿뽀로 역 매표소(트윙클 센터, 미도리노마도구치) 등에서도 일본어 외엔 구사할 수 있는 직원이 거의 없고. 호텔 프런트에도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고. (뭐 아주 특급 호텔이 아니어 그랬겠지만.) 우리나라도 그런가? 이 역시 우리나라에선 (거의) 우리말로만 의사소통를 하니. 그래도 내 생각엔 저 정도의 곳들에선 영어로 통할거라 생각하는데. 시청이나 명동쪽에 나가면 우리말도, 영어도 거의 못하는 일본 관광객들이 잔뜩 돌아다니는걸 보면.
3. 눈
홋카이도엔 정말 눈이 많이 온다. 그곳 사람들은 '눈'과 낭만적인 이미지를 전혀 연결하고 있지 못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오타루에서는, 바닷가 항구 도시다 보니, 눈을 가득 실고서 바다로 향하는 트럭들이 정말 많았다. 아마 바다에다 버리려는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이것 때문에 비행기도, 심지어 기차도 굉장히 자주 결항, 지연되는데, 그들은 묵묵히 그걸 받아들이는게 굉장히 놀라웠다.
첫날 힘겹게 힘겹게 공항에 도착했을때, 국내선 청사쪽엔 비행기가 결항돼 엄청난 사람들이 마냥 비행기가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스키/보드를 타러 온 것 같은 타지 사람들로 보였는데, 어디선가 담요를 꺼내서는 깔고 앉아 조용히 대기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다.
작년 봄이었나, 가족들과 제주도 갔다가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결항된 적이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으면 알겠지만, 날씨가 나빠도 모든 비행기가 바로 결항되지는 않는다. 계속계속 스케쥴이 연기가 되다가, 한참 후에야 결항 결정이 내려지는 것이다. 그때, 그 공항에 있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는데. 물론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괜히 비행사 창구에 가서 항의를 하고(비행사 직원들이 날씨가 그런걸 어쩌겠는가. 안전상 이유로 출발 못한다는데 거기 앉아있는 직원이 무슨 힘이 있을까), 새치기 했다며 다툼도 벌어지고, 우는 아기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큰 소리로 전화하는 사람들.
그때의 기억과 비교하며, 꽤 놀라웠다.
홋카이도에 사는 사람들이야 자주 있는 일이니 그럴 수 있다쳐도, 공항에 있던 타지 사람들은 안 그럴법도 한데.
선진국이란 이런건가, 국민성이란게 이런건가, 하는 생각도 해 보고.
다 써놓고 보니, 너무 친 일본적인건가..
어쩌면 그럴수도 있다. 친일, 이라는 용어에 부여되어 있는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너무나 (나쁜 쪽으로) 커서 그렇지, 사실 난 대단히 일본에 우호적인 것 같다. 일종의 동경의 대상일까?

